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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꽃미남으로 남아 있을 그 사람을 위하여

Posted By Deborah


미국의 화장실 낙서는 이렇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커트코페인은 죽지 않았다.-무명인- 그들은 우리 가슴에 영원히 별로 남아 있다. 글에 대한 답변으로 이런글이 나왔다. 커트코페인은 죽었다. -신- 이런 해프닝을 만들어 낼 만한 이슈를 지니고 있었던 꽃미남의 록커가 바로 커트 코베인입니다. 커드코베인은 너바나라는 밴드를 만든  리드 기타리스트 이자 리드 싱어 ,작곡가 이기도 했습니다. 그룹 Nirvana란 의미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열반이란 뜻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아마도 커트 코베인이 그당시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의 성장 과장을 한번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베인은 1967년 2월 20일  도날드 와 윈디 코베인에게로 부터 태어 났습니다. 위싱턴에 있는 Aberdeen(에브리딘 )병원에서 태어 났습니다. 그가 태어나자 6개월 동안은 작은 마을 Hoquiam곳에서 지내다가 위싱턴에 있는 에브리딘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의 숙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소질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두살때 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어릴때 자주 부르던 노래가 비틀즈의 "Hey Jude" 애창으로 부러곤 했습니다. 그의 나이 8살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일년후 어머니를 함께 지내다 워싱턴의 Montesano(몬테산노)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됩니다.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그의 고등학교 생활은 여자들에게는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습니다. 게이 친구를 두는 한편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레스링팀으로 활략하기고 했으나 결국 그만두게 되고 다른 여러 스포츠를 그의 아버지는 권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습니다. 게이 친구들과 함께 사귀면서 자신도 게이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실겁니다. 커트코베인은 게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의 일기장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자신은 게이가 아니다 그렇게 되지 않은 상황이 불쾌할 따름이다 라고  써여져 있습니다. 커트 코베인은 나중에 호모섹스을 옹호
하게 됩니다. 은행 벽에다 호모섹스자가 지배한다 라는 글귀를 스프레이 페인팅으로 적어 경찰에 체포되고 맙니다. 카톨릭 가정에서 자라난 그의 이런 행동이 주위의 충격적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애틀에 있는 펑크락을 접하게 되는 기회를 갖기도 합니다. 그후 12살때 어머니가 사시는 에브리딘으로 가게 됩니다. 그의 14살 생일날 삼촌으로 부터 선물을 받게 되는데 그때 기타와 자전거중 어느 선물을 선택을 하겠냐고 했을때 커트코베인은 서슴치 않고 기타를 선택 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AC/DC 의 Black in Black를 연주하고 직접 작곡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후 졸업을 2주를 남겨두고 고등학교를 자퇴를 하게 됩니다. 졸업할 충분한 학과 크레팃을 확보를 못한 이유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직장을 구하던지 아니면 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후 코베인은 옷을 박스에 넣고 짐을 꾸려 그의 어머니 곁을 떠나 친구집에서 살게 됩니다. 직장 생활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직장에서도 짤리게 됩니다. 1985년 직장 생활을 하면서 번 돈을 가지고 아파트를 얻어 친구와 함께 생활 하게 됩니다. 랜트비를 계속 지불 할수 없었던 코베인은 아파트에서도 쫓겨나게 됩니다. 코베인은 어디에도 자신이 몸을 부치고 살곳이 없어지자 위싱턴 리버 다리 아래에서 살게 됩니다.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그곳에서 살지는 안았다고 하는데 어느것이 사실인지 알수 없습니다.


1986년 말기에 리죠트에서 일 하면서 집다운 집에서 랜트비를 내고 살게 됩니다. 그의 락에 대한 열정은 살아 숨쉬고 있었고 기회가 닿으면 위싱턴에 있는 올림피아 의 락쇼를 보러 가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Tracy arander함께 활동을 하다가  1990년대에 헤어지고 베이스 비니킬 과 드러머 토비베일이 합류해서 너바나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 됩니다.너바나란 그룹은 1987년 고등학교 동창인 Krist Novoselic함께 만든 그룹입니다. 1991년 팝락 시장을 휩쓸었던 곡이 바로 Smells Like Teen Spirit"란 곡입니다. 음악 잡지책으로 유명한 로링스톤지에서는 100명의 기타리스 중에서 그를 12위 순위로 정할 정도로 그의 음악적 소질을 인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의 급속도로 성장된 밴드와 매스콤 그리고 팬들로 인한 스트레스 또한 그의 아내인 커트니 러브와의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한 많은 심리적 압박을 당하고 있을 그때 1994년 4월 8일 시애틀의 그의 집에서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쏜 흔적을 보아 그의 죽음은 자살로 입증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를 죽음으로 몰고간 여러 상황들을 놓고 많은 팬들의 아쉬움과 너바나라는 밴드의 생명력은 그가 죽음으로 종지부를 맺게 되었습니다. 어릴때 부터 결손 가정에서 자라나 어려운 사춘기를 겪고 사랑보다는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애쓰면서도 그의 남아 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죽었지만 그의 이름 석자는 많은 음악 팬들 가슴에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너바나를 생각하면 커트 코베인을 생각지 않을수 없습니다. 순수한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록계의 반항아로 직선적인 가사말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음악에 있어서만은 당당하고 자신의 끼를 발휘할 줄 아는 남자였습니다. 그런 꽃미남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먼 곳으로 떠나 버린 그를 생각하면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 되던 세상도 어쩌면 공평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 주어진 몫을 살다가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그는 27살의 나이에 많은것을 이루어 놓았습니다. 얼트락을 정착화 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고 그 덕분에 메탈이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록음악에 기여한 공로는 우리가 인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커트 코베인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습니다. 넌 왜 그렇게 잘 생겨서 모든 여성의 마음을 흔들어 논거얍? 그것도 모잘라서 음악으로도 사람 마음을 애간장 태우지 않았던가. 그런 너의 음악이 이제는 너를 다시 생각나게 해. 음악 그 자체가 바로 너였다는 것을.

여러분과 함께 듣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너바나가 들려 줍니다. lithiu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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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List

  1. BlogIcon 東氣號太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코베인이 죽은 5주년인가 되는해에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관련 엽서를 보내서 방송을 탔던 기억이 납니다.
    선물은 못받았지만^^;;

  2. BlogIcon Deborah


    눼..코베인은 아주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단지 아쉬움이 있었다면 여자를 잘못 만나서..ㅜㅜ 결국 자신의 운명을 달리 하게된 사례가 아닐는지요. 죽은 사람만 안타깝지요. 지금은 코트니 러브가 재산을 다 가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0-;;;

  3. 놀부흉내


    전 펑크록나 그랜지은 안들어요. 그까지 선택할 여유가 없었다는게 사실인데요.
    유명벤드로서 Nirvana 이름은 들어본 적은 있는데, 작품에 관해서는 영 ....

    하지만 이 곡에서 강열하게 느끼는 애수는 무엇일까요?
    보통 펑크형식이면 파괴적인 비트와 보컬의 박력을 과시한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곡에는 그런것이 없고 절절한 애수가 흐르고 있어요.

    아마도 작자자신의 충족되지 못한 마음이 전부 그렇게 시킨거죠.
    하지만 사생활에서 만족감이 있었더라면, 결코 이런 곡은 안태어났을 것이고 ....

    결국 이 사람도 성공하고 잘 나가게 된 중압에 못견뎌가지고 약물에 빠지고
    목숨을 끊은게 아닐까요?

    이렇게 해서 위대한 재능을 잃게 되니 참으로 아쉽습니다.

  4. BlogIcon Deborah


    가사말 잘 봤니.. ^^ 커트코베인이 직접 곡을 쓴건데. 이 사람은 아주 특이한것이 가사말도 그렇지만.. 우리가 느끼는 서정적인 부분을 노래에 가미해서 마치 우수를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넌 펑크는 안 들었군앙..나도 펑크를 잘 안듣지만..커트는 미워 할 수 없어. ^^

  5. 묘토


    커트코베인은 락의 하위장르인 그런지라는 이름을 떠나서,
    그 시대 거의 죽어있던 락을 다시 표면으로 떠올릴수 있었던 정말 막강한 음악을 만들었죠.
    정말 아쉬운 죽음인것 같아요. 아직 많을걸 할 수 있을탠데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동료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죠.
    Oasis, RHCP, REM등등 그의 죽음 이후의 추모 메시지와 바뀐 음악 스타일도 조금씩 느낄 수 있고...
    그래도 살아있었으면 해요. 아쉬워요.

  6. BlogIcon Deborah


    그렇죠. 덕분에 피를 본 것이 있다면 바로 헤비메탈 장르였져. ㅎㅎㅎ 하지만, 락을 다시 재 구성을 시킨 장본인이 바로 커트코페인 임을 인정하고 그의 공로는 위대합니다. 뭐..커트가 없었다면 오늘날 즐겨듣던 후배 밴드들도 없을테닌까요. 한 예로 REM 을 들을 수 있겠군요.

  7. BlogIcon 장대비


    커트코베인의 사진과 오래간만에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문득 '미로밴드'의 전설의 라이브 공연이 떠오릅니다.

  8. BlogIcon Deborah


    어서오세요. 코베인은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사람입니다. ^^

  9. BlogIcon Anti-Ag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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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BlogIcon no carb diet me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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